저 사람들한테 두 달은 고모(백화점 사장) 두 달과 달라요.
고모한테는 겨우 옷차림이나 바뀔 시간이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그 두 달 동안 매일 매일 더 끔찍한 속도로 가난해질 겁니다.
가난엔 복리 이자가 붙으니까.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중에서
고물가, 고금리가 서민들을 덮치기 시작합니다. 특히 고금리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취약계층을 상대로 고금리의 파도가 매섭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코로나 국면 때, 오늘은 버티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대출로 버텼는데,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금리가 치솟으면서 소비가 식고, 이자 부담이 급증하게 된 것이죠. 당장 오늘은 대출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카드론, 제2금융권, 심지어 대부업까지 쓰면서 궁지로 몰리고 있습니다.
또한 주택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러다 영원히 집을 사지 못할 것이란 두려움에 혹은 차익을 노린 투기의 목적 등으로 무리하게 이를 구입한 계층의 이자 부담이 많이 증가하면서 소비의 여력이 쪼그라들고 있습니다. 이미 월 소득을 넘어가는 이자 부담을 감당하기 힘들거나, 전세금 등을 반환하지 못해서 담보물을 경매에 내놓는 담보권 실행 경매 매물이 급증하고 있다고 합니다. 레버리지란 양날의 검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한계금리에 진입했다는 다수의 의견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미국 연준이 내년 한계금리를 0.5% 인상해서 5%대까지 제시했기 때문에 한국은행 또한 추가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그러자 금감원은 취약 차주 또는 영혼까지 끌어다 투자한 계층을 상대로 금융지원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똑같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성실하게 대출을 상환하는 사람들에 대한 역차별이자, 모럴해저드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금융시스템은 신용을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들 계층에서 연체율이 증가해서 금융사의 부실로 이어진다면 꽤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문제가 신용상에 문제가 없고, 빚을 잘 갚고 있는 사람들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는 금융을 젖줄로 해서 촘촘하게 엮여 있기에 제조업 회사가 부실해지는 것과 그 영향력에 있어서 차원이 다릅니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금융사는 작은 부실로 인해 실제 손해가 크지 않더라도, 투자자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전염되기 시작하면 일파만파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최근의 ‘레고랜드 사태’만 보더라도 강원도에서 시작한 날갯짓이 채권 시장 전반에 현재까지 영향을 끼치고, 국가 신용도까지 거론된 것처럼 말입니다.
연준의 발언을 참조하자면 적어도 내년까지 고금리가 유지될 것이고, 금리인하를 하더라도 예전같이 제로 금리로 급격하게 낮추는 것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앞으로 상당한 시간 동안 고금리가 유지된다고 본다면 취약 차주의 연체율이 증가하기 시작하는 초기에 이들을 지원하는 정부의 파격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은행은 맑을 때 우산을 빌려주고, 막상 비가 오면 이를 거둬간다’는 명언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투자자라면 앞으로 정부의 정책에 관심을 갖고, 부채와 관련된 통계들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된 날갯짓이 태풍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곱씹어야 하는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경제의 가장 취약점이라 할 수 있는 자영업자 대출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매출에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은 어떻게든 이 시기를 넘기면 다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고 대출로 버텼습니다. 다행히 정부 지원책까지 더해지며 힘든 시기를 겨우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매출 회복이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은 상태인데 금리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소비가 차갑게 식어버리자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자영업 종사자 인구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경쟁은 더 치열해지는 가운데 공공요금 인상도 예고되면서 시름은 더 깊어질 전망입니다. 경제 인구 5명 중 1명꼴로 자영업자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 계층의 붕괴가 시작되면 경기침체가 가속화될 전망입니다. 특히 정부의 지원 혜택이 끝나는 시점과 맞물려서 부실이 드러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대출의 연체와 부실 위험률을 지속해서 체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 중에서 자영업자 대출에 대한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년 빠른 금리 인상으로 가계대출 증가율은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자영업자 대출은 2022년 3분기에도 14.3% 증가하면서 꺾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비취약차주의 대출 증가세는 금리인상을 기점으로 꺾이고 있으나, 취약 차주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더 우려스러운 부분은 은행보다 비은행권 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22년 3분기를 기준으로 전년 대비 은행 대출 증가율(6.5%)보다 비은행 대출 증가율(28.7%)이 4배 이상 높은 수준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자영업자는 급여생활자들보다 상대적으로 환금성이 떨어지는 주택 외 부동산담보대출이 약 3배에 달합니다. 부실이 현실화하였을 때, 은행이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서 손실로 떠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음을 의미합니다. 즉, 자영업자는 비은행권을 중심으로 환금성이 힘든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늘려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장은 정부의 지원 효과에 힘입어 연체율이 안정적으로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종료와 맞물려 한계에 직면하는 자영업자가 많아질 수 있습니다. 또는 이미 한계에 부딪혔지만,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대출로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가 상당수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소비가 살아나지 않은 한, 정부의 지원이 중단되는 시점에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확률도 배제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비금융권의 회수 손실로 인한 부실화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날이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하철을 내려서 빠른 걸음으로 출구로 나서는 순간, 수많은 인파가 한 건물 앞에 운집해 있었습니다. 굳게 닫힌 철창문을 사이에 두고 목이 터지라 항의하는 아저씨부터 주저앉아 울면서 신세 한탄을 하는 아주머니까지… 물론 PF대출의 부실로부터 한 저축은행이 파산까지 이어진 원인이 가장 크지만, 불안감에 휩싸인 예금자들의 뱅크런 또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금융은 늘 신뢰를 기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별거 아니라 치부되었던 작은 불안마저도 서둘러 차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안감이 한번 투자자들 사이에서 전염되기 시작하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도 막을 수 없는 태풍으로 변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경제의 가장 취약한 고리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투자자라면 앞으로 정부에서 어떤 대책이 나오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으며, 이 부분에서 문제가 시작될 가능성을 항상 체크해야 합니다. 특히 지금같이 금리가 오르는 시기에는 더 민감하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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